샤넬 매장 앞에 길게 줄 선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럴 일이 없겠지 했지만 결국 나도 어쩔 수 없이 줄을 서고 말았다.
샤넬 가방을 재테크에 이용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샤넬 가방이 갖고 싶어서도 아닌, 엄마에게 샤넬 가방을 선물해 주겠다는 의도로.
나는 정말 샤넬 가방이 필요했는데 왜 하필 이런 때에 걸려서 이렇게 고생하나 싶었지만, 결국엔 지나고 보니 꽤나 재미있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사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을 방문하기 이전에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을 방문했었지만,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은 정말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서 조금만 늦게 가도 샤넬뿐만이 아니라 모든 지점에 웨이팅이 몇십 명씩 걸려 있었다.
그 마저도 오후 3시를 넘어가면 모든 매장의 웨이팅도 끝나고 사실상 거의 모든 명품 매장에 들어갈 수가 없는 정도였다.
너무 혼잡하기도 하고 원하는 제품을 보기에는 힘들 것 같아서 나는 다음날 아침 오픈 시간에 맞춰서 좀 더 한가한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으로 가기로 했다.
오픈런이라고는 했지만 한 겨울에 새벽부터 줄 서는 것은 힘들 것 같아서 소심하게 10시 백화점 오픈 시간 조금 전에 도착해 지하에서 살짝 줄을 섰다.
그러니 10시 백화점 오픈 시간에 맞춰가면 언제 무엇을 살 수 있나가 궁금하신 분은 계속 읽어주시면 좋겠다.
내가 간 날은 1월 첫째 주 일요일, 그러니까 주말이었고 날이 아주 추웠고 미세먼지가 최악인 날이었다.
10시 15분 전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들어가는 입구를 보니 3팀 정도가 줄을 서 있었고 나도 그 뒤에 줄을 섰다.
그 후에 내 뒤로 줄이 엄청 길어졌는데 나중에 보니 다들 에르메스나 샤넬 둘 중 하나를 사려는 사람들이었다는.
10시 정각에 백화점에 입장해서 1층 샤넬 매장으로 가니 줄이 길긴 했는데 의외로 생각보다는 길지 않은 느낌이었다.
내 앞에 서신 분들은 춥고 미세먼지 많은데 새벽부터 매장 밖에 줄을 서셨던 대단한 분들.
10시에 도착하니 이미 번호표를 발급받고 있었는데 기다리는 게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다.
20분쯤 지나서 번호표를 받았고 딱 100번이었다.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주말에 10시 오픈 시간에 맞춰 가면 아마도 100번대 번호를 받지 않을까 싶다.
함께 간 일행들 모두 대기 번호를 따로 받았고, 예약을 하면 카톡으로 예약이 되었다는 안내가 온다.
나중에 카톡으로 인원이 얼마 남았다는 공지를 계속 볼 수 있기 때문에 카톡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는 그냥 자유시간을 즐기면 된다.
그리고 매장에 들어가 실제로 구매할 때는 구매하는 사람의 신분증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미리 알려준다.
샤넬 제품을 구매하면 구매이력을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구매하는 사람의 신분증이 꼭 필요한데, 이때 결제 카드의 소유주와는 달라도 상관이 없다. (이건 샤넬의 정책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예약할 때 한 번 물어보고 확인하는 게 좋겠다.)
아무튼 나는 예약 번호 100번을 받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가서 여유롭게 셀린느, 발렌티노 등 다른 명품 브랜드도 구경을 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은 신세계 강남점과는 다르게 샤넬, 에르메스 외에는 그다지 웨이팅이 없고 특히 2층 명품은 정말 사람이 없어 한가하다.
대기 번호를 받고 여유 있게 다른 명품들을 구경해도 좋을 것 같다.
보통 현대백화점 건너편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기도 하는데, 나는 집이 가까운 편이라 집에서 점심을 먹고 대기 번호를 보다가 맞춰 나올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건 그래서 언제 들어갔는가 하는 것인데, 초반에는 정말 번호가 안 줄다가 점심시간쯤 되면 물건이 없는지 빠르게 번호가 줄어든다.
그러다가 다시 오후 2시부터는 웬일인지 정말 번호가 잘 안 빠지다가 다시 4시 쯤되면 빠르게 빠지고 그런 패턴이 계속된다.
결론은 100번 번호표를 받았을 때 거의 4시 40분쯤 거의 5시가 다 되어서 매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매장에 들어갔는데 매장 직원분들은 정말 지쳐 보이고 매장에 물건도 거의 남아있질 않다.
신상은 당연히 하나도 없고 거의 예전부터 판매하는 클래식한 제품들만 남아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나는 엄마에게 어울릴 것 같은 가방을 발견했고 구매에 성공할 수 있었다.
구매를 하면 위에 말한 것처럼 신분증을 내고 등록을 해야 하고 백화점 상품권, 현대백화점 주머니 쿠폰 등 현대백화점에서 발행하는 모든 상품권은 다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편한 소파 자리에서 포장할 때까지 편하게 대기를 하다가 페리에 한 병씩 챙겨 받고 '축하드립니다'라는 직원분들의 배웅을 받으며 매장을 나왔다.
참고로, 가방 이외에 샤넬 옷이나 신발 액세서리 등을 구매한다면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얘기하면 입장할 수 있다.
얼떨결에 동참하게 된 샤넬 오픈런 체험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도 있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물건을 샀을 때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묘한 감정이 들었던 경험이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이 없겠지만, 인생에 한 번쯤은 이런 경험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