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테이스팅 / / 2021. 3. 5. 10:45

이탈리아 레드 와인, 그랑 파씨오네 로쏘 베네토(Gran Passione Rosso Veneto)

사실을 말하자면, 신세계 백화점 본점 와인코너에서 추천으로 데려왔지만 다른 와인들에 밀려 시음을 계속 미루고 있던 와인이었다.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다른 와인들과 달리 소박한 와인 라벨과 IGT(생산지만을 표시하는 와인) 와인이라는 점에 아마도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미루다가 파스타 요리를 한 어느 날, 아끼는 와인은 마시기 그렇고 좀 더 편안한 테이블 와인이 마시고 싶을 때 드디어 그랑 파씨오네를 꺼내 들었다. 

 

그랑-파씨오네-로쏘-베네토 

 

IGT 와인 

 

지난번 '이탈리아 와인의 모든 것' 포스팅에서 정리한 내용을 복기해 보면 IGT는 이탈리아 와인 등급의 하나로 와인의 생산지만을 표시할 수 있고 DOCG나 DOC처럼 와인을 생산한 지역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는 와인이다. 

 

그랑 파씨오네의 라벨을 보면 VENETO(베네토)라고 쓰여있고 그 밑에 Indicazione Geografica Tifica라고 표시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즉, 큰 단위의 베네토 지방의 이름만을 명시할 수 있고 그 아래에 상세한 지역명, 예를 들어 '발폴리첼라' 같은 지역명은 기재할 수 없는 와인이다. 

 

와인을 처음 접했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 블로그에 와인에 대해 정리를 하면서도 계속 읽은 내용이지만, 이런 와인의 등급은 그 지역의 떼루아를 잘 표현한 와인에 주는 것이지 결코 와인의 맛에 대한 평가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와인 초보자들은 항상 이런 등급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알고는 있지만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아 그동안 이 사실이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그랑 파씨오네를 마시면서 드디어 와인의 맛은 등급 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카사 비니코라 보떼르

 

카사 비니코라 보떼르(Casa Vinicola Botter)는 1928년 베네토에서 배럴 단위로 와인을 판매하는 작은 와인상에서 출발하여 3대째 대를 이어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는 베네토 지방의 대표 와이너리이다. 2차 대전 이후에 병와인을 생산하고 수출에 집중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90% 이상의 매출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는 와이너리이기도 하다. 

 

 

 

테이스팅 노트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서 재배되는 메를로(Merlot) 60%와 코르비나(Corvina) 40%를 블렌딩 한 와인. 검붉은 과일류 특히 자두의 향이 풍기면서 바닐라와 오크의 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온다. 입 안에 머금으면 상큼한 신맛이 개성 있게 느껴지는데 과하게 시지 않고 적당한 탄닌감과 함께 밸런스가 잘 맞춰진다. 

 

마시면 마실수록 안정적인 밸런스에 가끔씩 느껴지는 신맛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데 아마도 코르비나 품종에서 나오는 신맛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이렇게 구조감이 좋다 보니 어떤 음식에나 잘 어울릴 것 같고 시음한 날 먹었던 파스타와도 정말 잘 어울렸다. 지속적으로 은은하게 풍기는 바닐라의 향이 달콤하고 마무리감도 깔끔해 음식에 곁들일 데일리 와인으로 딱이다 싶은 와인이었다. 

 

특히, 이틀째 마셨을 때도 맛이 그대로 보존되고 밸런스도 신맛도 무너지지 않아 오래 두고 마셔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IGT 와인이라 시음을 미루다가 의외로 너무 맛있어서 숨겨진 보석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느끼게 해 준 와인. 어떤 와인을 마셔야 할지 모를 때, 와인 테이스팅 따위는 잊어버리고 그냥 즐기고 싶을 때 다시 찾게 될 좋은 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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